우리지역 이야기

퉁수국 먹고 속 시원한 정치 좀 해라"

초심방 2007. 1. 16. 14:18

죽변항 최고의 '생선 다듬기 명수' 김옥련 할머니의 새해 소망

울진타임즈, uljintimes@empal.com

등록일: 2006-12-29 오후 6:48:11

 
▲ 시민의 신문 남효선 기자 
오십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죽변항을 지키며 싱싱한 생선을 장만해 온 김옥련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속 시원한 퉁수탕처럼 새해는 속이 확 뚫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별기고 시민의신문 남효선 기자>

【울진】“못생겨도 맛은 일품인 퉁수지리탕 한 그릇이면 속이 환해지니더. 새해는 퉁수지리탕처럼 속이 시원해지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니더”

김옥련(75, 죽변)할머니는 스물 다섯 나던 해에 죽변으로 시집와서 50년 째 죽변항을 지키며, 죽변항으로 오르는 싱싱한 생선을 장만해 온, 죽변항 최고의 ‘생선 배따기의 명수’입니다.

오십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죽변항을 지키며 싱싱한 생선을 장만해 온 김옥련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속 시원한 퉁수탕처럼 새해는 속이 확 뚫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죽변항으로 오르는 생선 중 옥련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생선이 없을 정도로 옥련 할머니는 평생을 생선을 다듬으며 살아왔습니다.

옥련 할머니의 손끝에 잡힌 생선은 금세 먹음직스런 반찬거리로 탈바꿈합니다. 맹독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잘 만지지 못하는 복어도 할머니 손끝에서는 그저 여느 생선과 다름없는 맛있는 국거리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옥련 할머니가 하루 종일 생선을 다듬는 곳은 죽변항과 이마를 맞댄 죽변수협 위판장 바닥입니다. 옥련 할머니의 평생 일터인 셈입니다. 할머니는 매서운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불어오는 겨울이나,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가을 봄 내내 이곳을 지키며 육남매를 키워냈습니다.

옥련할머니가 평생 세상과 맞서 살아온 무기는 ‘남 해꼬지 안하고 지 힘으로 벌어먹고 사는 순한 마음씨’와 ‘칠십 평생 묻은 손때로 반들거리는 손칼’ 하나입니다. 자그마한 손칼 하나로 이 태 전 치룬 막내 혼사를 끝으로 육남매를 모두 출가시켰습니다. 손자손녀들이 모두 열 한 남매입니다. 겨울 방학이면 눈망울 또렷또렷한 손자들이 할미를 찾아 올 것입니다.

옥련 할머니가 앳된 처녀 적부터 거친 죽변항에서 손칼로 생선을 다듬은 것은 아닙니다. 거친 바다와는 영판 상관이 없던 농촌마을인 북면 흥부 땅에서 죽변으로 시집을 온 뒤, 연년생으로 아이 여섯을 낳던 해에, 바다로 나간 지아비가 영 돌아오지 않았을 때부터였습니다.

이때부터 옥련할머니는 핏덩이 막내를 업고, 귓불을 에는 바닷바람 앞에서 생선을 다듬었습니다.
 
할머니의 하루 벌이는, 많을 때는 5만원을 벌 때도 있지만 대부분 3만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벌이가 영 시원찮았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변항을 먹여 살리던 오징어를 중국 쌍끌이 어선과 남해안 대형 멸치잡이 트롤선(쌍끌이어선)이 불법으로 싹쓸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민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이를 단속해줄 것을 수 십 차례 요구해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 귀가 번쩍 뜨일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해연안에서 불법으로 오징어를 싹쓸이 하던 대형 트롤선을 단속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항구 사정이 나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우리 이웃들의 몫이 아니라, 늘 가진 사람들 몫인 줄 진작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퉁수는 모습이 울퉁불퉁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미끈하게 잘 생긴 대구나 방어, 황열기(붉은 우럭)와는 달리 퉁수는 이름만큼이나 생김새 또한 못났습니다. 때문에 값 또한 대구나 황열기에 비해 턱없이 쌉니다. 그러나 옥련 할머니는 퉁수를 제일로 맘에 들어 합니다.

최고의 속풀이용 국거리로 이름 난 퉁수. 요즈음 죽변항은 본격적인 퉁수철이다.
 
▲ 시민의신문 남효선기자 
최고의 속풀이용 국거리로 이름 난 퉁수. 요즈음 죽변항은 본격적인 퉁수철이다.
‘꽉 맥힌 속을 단숨에 확 뚫어주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육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며 ‘속이 콱콱 맥히고 천불이 날 때’ 마다 퉁수국을 끓여 속을 풀었습니다. 무를 얇게 썰어 냄비에 앉히고 내장을 발려 낸 퉁수를 뭉텅 도막내어 넣은 뒤, 파와 다진 마늘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끓여 단숨에 훌훌 마시면 금세 답답하던 속이 환해졌습니다.

옥련 할머니는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집으로 불러 ‘퉁수 지리탕’ 한 그릇씩 대접했습니다. 자식에게 끓여 먹이듯 갖은 양념을 넣어 정성껏 먹였습니다. 옥련 할머니가 퉁수지리탕을 끓여 먹인 것은, ‘속 시원한 퉁수지리탕 먹고 속이 확 뚫리는 정치 좀 해달라’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으면 개띠 해가 저물고, 돼지 띠 정해년 새해 붉은 해가 죽변항을 박차고 떠 오를 것입니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내년이 ‘황금돼지 해’라고 부산을 떨지만 옥련 할머니의 바람은 소박합니다.

그저 실업자 없이 일할 곳을 많이 만들어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게’ 할머니의 꿈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이 태 전에 결혼시킨 막내아들이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서민주택 정책만이라도 제대로 펼쳐주었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망입니다.

할머니의 평생 일터인 죽변항에 겨울 낙조가 내려앉았습니다. 황홀한 붉은 빛입니다. 옥련 할머니의 손칼 놀림이 다시 분주해졌습니다. 낙조가 걷히기 전에 주문받은 퉁수 장만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의신문 남효선 기자 nulcheon@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