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인물들

[스크랩] 박정희 와 김재규 그리고 금오산

초심방 2007. 5. 1. 10:37
박정희와 김재규 그리고 금오산
구름에 달 가듯이-꽃길 따라 (11) 선산 이문동
▲ 구미 금오산. 산의 모양새가 거인이 누워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거인봉(巨人峰)’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와불상(臥佛像)’이라고도 한다.
ⓒ2004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두 사람은 구미 금오산(金烏山) 사람으로 동향인이지만, 좀더 자세히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구미 태생이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선산 태생이다.

선산(善山)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 일선주(一善州)라는 큰 고을로, 고려 때는 도호부(都護府)로, 조선조에는 현(縣)으로 내륙의 이름난 고을이었다.

이에 견주어 구미(龜尾)는 신라시대부터 2000여 년 동안 선산 관할에 속한 조그마한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1910년 일제가 강점한 이후 경부선 철도가 구미를 지나게 되자 신문명과 교통에 따라 선산은 점차 구미에 밀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5·16 후 구미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선산은 구미의 그늘에 가리게 되었다.

▲ 구미시 상모동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 복원한 집으로 원래의 집은 이보다 훨씬 초라하다.
ⓒ2004 구미시
지금의 행정상 명칭은 구미시 선산읍이지만, 내가 초등하교 다니던 시절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이었고, 5·16 이태 후 선산군 구미읍으로, 1978년에는 구미가 시로 승격하여 선산군에서 분리되었다가 1995년에는 구미시가 선산읍을 흡수 통합하여 자기를 키워준 선산을 거느리는 꼴로 변모해 버렸다.

선대부터 선산에 뿌리를 둔 이는 옛 고을 선산이 신흥 구미에 흡수 통합된 꼴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필자가 구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 선산군 군내 체육대회 결승전에는 선산과 구미가 맞붙어 자웅을 겨루던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했다. 마치 신세대와 구세대의 대결인 양.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 선산은 구미에 추월당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예로부터 금오산 기슭에는 수많은 인물이 태어났다. 고려 말 충신이며 대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사육신의 하위지(河緯地),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그밖에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등 쟁쟁한 선비들이 이 지방 태생이다.

▲ 선산 이문동에 있는 김재규 부장의 본가. 주인 잃은 집은 어딘가 쓸쓸하다.
ⓒ2004 박도
그래서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 선산의 옛 지명)에 있다. 그런 까닭으로 예로부터 문학하는 선비가 많았다.(朝鮮人才半在嶺南 嶺南人才半在一善 故舊多文士)”라고 하여 선산 고을을 충절과 학문의 고장으로 여겨왔고 이 고장 사람 역시 그것을 대단한 긍지와 자랑으로 삼아왔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두 사람은 동향에다가 해방 후 같이 군에 입대한 동기(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요, 이후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를 신임하여 3군단장, 유정회 의원, 정보부차장, 건설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온갖 요직에 등용시켰다. 그렇다면 왜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머리에 총을 겨누었을까?

뱁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궁정동 최후의 만찬 그 진실의 실체는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드러날 테지만, 김재규 부장 마음속의 밑바닥에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이 고장의 정신과 가문의 전통도 작용했으리라고 뱁새 나름대로 추리해 본다.

선산읍 삼거리에서 김천 쪽으로 조금 달리자 곧 이문동 김 부장 집이 나왔다. 지난해 가을 벌초 때 들러본 일이 있기에 바로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 발길을 돌렸다.

▲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필자(2002년 겨울)
ⓒ2004 박도
마침 지난해 가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지난 가을, 필자가 김 부장 집을 찾자 60대 초반의 부인이 나왔다.
“어데서 왔능교?”
“구미서 왔습니다.”
“구미사람이 또 불 지를라고 왔능교?”
“네?…”
“그때(1979. 10. 26) 구미사람들이 이 집에 불 지른다면서 몰려왔다 아입니까?”

그 분은 집주인과 먼 인척으로 김 부장 가까운 친척은 모두 멀리 살기에 당신 내외(천씨)가 집을 지킨다고 했다. 필자가 구미 사람이지만 지금은 서울사람으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려고 왔다고 하자 그제야 부인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사진 촬영도 쉬이 허락해 주었다.

주인을 잃은 집은 덩그렇게 쓸쓸하기 그지없다. 해방 후 두 사람이 구미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같이 타고 갈 때 30년 뒤 머리에 총을 쏘는 사이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멀리 남쪽 하늘에 우뚝 솟은 금오산은 두 사람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제나 이제나 아무 말이 없다.
출처 : 황산벌191
글쓴이 : 황산벌19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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