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인물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초심방 2007. 8. 2. 17:21
한국 최고의 역학자 격암 남사고가 약 4백여년 만에 그의 생가터에서 대궐같은 집을 짓고 다시 태어났다. 울진군은 약 40억원을 들여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지난 6월경 격암정사, 서재, 사당 복원을 완료했다.

울진군은 격암의 생가터인 근남면 수곡리 수곡리 누금마을 392번지 외 53필지의 부지 30,035㎡(9,086평, 생가터 11,113㎡ 2블럭 18,922㎡)에 총사업비 3,868,000천원을 들여 공원화 하여 개관만 남겨두고 있다.

격암정사 목조한식기와 64.80㎡(19.6평), 목조한식기와, 35.10㎡(10.6평), 목조한식기와, 18.81㎡(5.7평) 와 사주문 1개소(1.36평), 협문 3개소를 지어 주요 건물외부에는 토석담장과 석축을 설치하고, 전기공사 주물 외등 10개소, 잔디 등 20개의 조경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개방된 광장에는 화장실, 팔각정자 1개소, 초정 2개소, 사각파고라 4개소, 평의 자 22개소, 홍살문 1개소, 정자, 파고라, 물레방아 1개소, 솟대 2개소, 그네 1개소, 종합안내판 2개소, 연못 1개소, 음수대 2개소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또 2,441㎡에 FC황토포장을 하고, 891㎡에 점토벽돌포장을 하여 대형버스 11대, 소형 65대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하고, 공원등 23개를 설치하는 등의 조경공사를 하여 부지 전체를 공원 관광지화 했다.

울진군의 관계자는 유교문화 관광자원을 확충하고, 청소년들에게 충.효.예 의식을 바탕으로 한 선비정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교육적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격암 사당을 복원하고 주변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울진군은 격암정사 등 건축물에 대해서는 영양남씨 문중에서 관리`사용하게 될 것이며, 시설물 유지관리?보수는 입장료 수입으로 울진군이 맡아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소개
                
본관: 영양/ 호: 격암 / 활동분야: 철학/ 주요저서: 《격암일고(格庵逸稿》/ 출처: 네이버

「노스트라다무스와 남사고」는 거의 같은 시대를 지구의 반대편에서 살았다. 이들 두 사람은 동서양을 대표하는 위대한 철인 예언가이다. 비록 동`서양의 정신세계가 다를지라도, 신의 숨결과 합치된 이들 예언가는 미래 인류의 삶을 비슷한 모습으로 전해 주고 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1509~1571)는 조선 명종 때의 철인으로 울진(蔚珍) 사람이다. 남사고는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천문, 지리에 통달했다 한다.
효행과 청렴으로 이름났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다. 역학(易學)·풍수(風水)·천문(天文)·복서(卜筮)·관상(觀相)의 비결에 도통하여 예언이 꼭 들어맞았다고 한다. 풍수학(風水學)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1575년(선조8)의 동서분당(東西分黨), 1592년의 임진왜란(壬辰倭亂) 등을 명종 말기에 벌써 알아맞혔다고 한다. 그에 앞서 1564년(명종19)에 내년에는 태산(泰山)을 봉하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이듬해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별세하여 태릉(泰陵)에 장사지냈다.
특히 풍수학(風水學)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1709년(숙종35) 울진(蔚珍)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 문집옅격암일고(格庵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