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인물들

일제의 만행들

초심방 2007. 8. 13. 11:27
'여자정신근로령'에 의해 근로협력명령을 내려진 후 조선 각지에서 일본 경찰의 지휘로 처녀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정신대의 이름으로 각 군수공장으로 강제 동원되었다.
 

1938년 5월 10일 '국가총동원령'이 실시된 후 6월 13일 '학도근로보국대' 실시 등으로 부녀자와 학생들을 노력 동원하였다.

1939년 10월 1일 악명 높은 '국민징용령' 실시로 45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일본의 탄광·군수공장·군사시설·공사장으로 끌려갔다. 1944년 2월 8일 '총동원법'에 의거하여 한국인에 대한 전원 징용이 실시되었다.
 
일본의 만행 1
잔인한 일본군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
잔인한 일본군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

일본군 놈들은 잔악하게 죽은
사람들을고히 묻어주지는 못할망정...
나무에 매달아 놓고 즐거워 한다...
도대체 이 놈들에게는 인간의 모습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거 같다...

일본군 놈들은 잔악하게 죽은
사람들을고히 묻어주지는 못할망정...
나무에 매달아 놓고 즐거워 한다...
도대체 이 놈들에게는 인간의 모습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거 같다...
끔찍한 장난

항일투쟁을 하다 처형된 시신의 목을 올려놓고
입에 담배까지 몰려놓은 모습이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믿기않는 일제의 잔혹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다.
세균전의 주동자

위에 보이는 미친놈이 731부대 세균전의 주동자였다...
이놈의 입에다가 세균전에 ?던 것들을
다 넣어 주고 싶다...
집중사격

만주벌판에서 항일병(또는 민간인)
을 사냥하는 장면이다...
총으로 위협을하고 포위하면
또다시 잔악한 행위가 이루어진다...
잔악한 처형의 순간...

칼로 목을 칠 때 몸이 넘어가지 않도록
팔을 뒤로 묶어 목을 내리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처음 이 사진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이 페이지를 만들면서도 일본의 잔악함에 치를 떨었다...죽일놈들...)
마루타 생체 실험(731부대)

마취도 안된상태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일본군들...
뒤에 마스크를 쓰고 실험내용을 지켜보고 있는 일본군장교...
얼굴 전시...

일본군은 포로가 된 민간인들의
목을 베어 마치 상품을 진열해논 듯 전시하고 있다...
장난삼아 하는 살인...

한 일본군이 시신의 목을베어 그 머리의 귀를 잡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웃고 있는 일본군의 표정으로 보아 죄의식이라던가,
일말의 양심조차 없어보인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긴 일본제국주의의 허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뼈아픈 사진이다.
지 애비가 죽을 때도 웃고 있을 쪽바리 새끼들...
처형직전의 모습

일본군에게 저항하다가
처형당하기 직전의 모습...
[옮김]
◇ 남양군도로 이동 중 덕수궁 인근에서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 ⓒ 끼뉴스

8.15
광복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경기도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징용했던 내용을
생생히 담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60여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들은 일제강점 때 군인, 노무자 등으로
강제 동원돼 노역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들 사진들은 만주, 일본 본토, 북해도, 남양군도(필리핀, 뉴기니아 등), 사할린 등에 징용된
당시 상황들이 촬영된 사진들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군인, 군속, 노무자 등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이 60여년 간 소중히 보관하던 사진들로
당시 노역 상황과 훈련 모습, 덕수궁 등 옛 모습들을 생생히 전해주는 사진이다.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는 11일 “지금까지 막연하게 강제동원에 관한 언급밖에 없었다”
면서 “공개된 사진들은 강제동원 가기 전 환송 장면,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현지 도착 후 단체 사진, 군인•광부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상을 보여줘 의미가 크다”
고 밝혔다. 박교수는 이어 “단체사진 등을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많은 피해사례를 밝힐 수 있는 구체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도 역사규명팀 김차영씨는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을 통해 강제 동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도문제, 역사왜곡 등 경기도민에게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더 많은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순회 전시회 등을 기획,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징용 전 마을에서 환송식 모습. 일제가 화려한 환송식을 통해 징용을 유도했음을 보여준다. ⓒ 끼뉴스

◇ 만주 훈련소(제13053부대원) 아침 조회 장면 ⓒ 끼뉴스

◇ 남양군도로 이동하기 전 신사 참배하는 모습 ⓒ 끼뉴스

◇ 현 육군사관학교 인근 태릉훈련소에서 훈련받는 모습. ⓒ 끼뉴스

◇ 훈련소에서 목총으로 훈련받는 모습. ⓒ 끼뉴스


◇ 일본 1902부대 포대 진지에서 근무하는 모습 ⓒ 끼뉴스

◇ 일본 북해도에서 중국인과 함께 촬영한 사진. 당시 중국인들도 만주 등지에서 징용되었다. ⓒ 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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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현 광업소에서 채탄 작업을 위해 막장으로 들어가기 전 촬영한 모습 ⓒ 끼뉴스

일제징용 자료 379점 공개…‘강제동원’ 생생히 증언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23일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이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증한 사진, 문서 등 자료 379점을 담은 ‘강제동원 기증 자료집’을 공개했다.

자료집은 2005년 2월 위원회 출범 당시부터 172명이 기증한 자료들로 이뤄져 강제동원의 역사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인·군속 및 노무동원 사진자료 253점, 명부자료 24점과 문서자료 68점, 박물자료 및 기타자료 34점으로 이뤄져 있다.

사진 자료의 특징은 대부분 일제기관과 일본회사에 의해 미화됐다는 점이다. 절제된 자세와 단정한 차림의 사진 속 인물들에게서 강제동원의 흔적은 선뜻 발견되지 않는다.


강원도 강릉지역 여성들이 ‘국민총력 용강동(강릉)연맹 부인부’ 결성을 기념하는 근로봉사를 하며 찍은 사진.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있다. 갓난애를 업은 여성도 있다. 뒤쪽에 일본 군복 차림의 남성들이 서 있다.


일본 왕이 조선인 징용자 사망자에게 보낸 부의금 봉투 모습. ‘世田森平’이란 사망자의 한국 이름은 주삼평이라고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밝혔다.


일본군에 징집된 젊은 조선인 훈련병들이 서울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일장기를 든 환영 행렬이 이채롭다. 전차와 나무로 된 전봇대, 일식 풍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일본군 징집을 앞둔 젊은이들이 충북 홍성공립보통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홍성은 지금은 충북이 아니라 충남에 있다.


조선총독부 육군병지원자 훈련소 훈련생들이 동대문 앞을 행군하고 있다. 1941년 9월12일 사진으로 추정된다. 전차 철로와 넓은 광장 등이 지금의 동대문 풍경과는 매우 다르다.


홋카이도 구시로시 샤쿠베쓰 탄광의 한 갱 입구에서 찍은 조선인 노무자들의 단체사진.


1942년 7월13일 일본군에 징집된 조선인들이 서울에 있던 조선신궁에서 허리를 굽혀 참배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숨은 강제 동원과 열악한 노무환경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번 자료집에는 전시 군인 동원을 부추긴 흔적이 엿보이는 홍보목적의 군인 동원 사진이 다수 담겼다. 주로 군사훈련이나 사열 장면, 현역병과 학도지원병들의 단체 사진, 징병 환송식 사진과 입대 기념 사진 등이다.

조선총독부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에서의 스모 대회 장면이나 군사 훈련 장면들은 당시 군인 동원 현장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노무동원 사진으로는 탄광 입구에서의 단체 사진이나 합동장례식 장면, 귀환자 단체 사진 등이 눈에 띄었다. 군속 동원 사진은 희귀한 편으로 선박 주유수 동원 사진이나 단체 사진 정도가 실렸다.

명부 및 문서자료는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명부 자료 중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선별된 10점은 ‘위인정자료(증거가치가 높은 자료)’로 등록돼 위원회에서 피해자 규명을 위한 1차 증빙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명부들에는 강제동원된 인물들의 성명과 주소, 피해자 개개인의 동원 배경과 사유, 동원 과정 및 경로들이 기재돼 있다.

문서 자료에는 군인 및 노무수첩, 급여명세표, 출근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들은 정부·기업·단체와 피해자 사이에 오간 것으로 임금 수준과 지급방법, 노동시간, 사망사고 처리 등의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박물 자료는 피해자들의 고된 삶을 말해주는 유품들이다. 입대 당시 사용한 어깨띠나 일본군 계급장, 군용 수통이나 반합, 탄광에서 사용한 칸델라(휴대용 석유등) 등 강제동원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강제 징용 사진 60년 만에 햇빛

◇ 남양군도로 이동 중 덕수궁 인근에서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

◇ 징용 전 마을에서 환송식 모습. 일제가 화려한 환송식을 통해 징용을 유도했음을 보여준다.

◇ 만주 훈련소(제13053부대원) 아침 조회 장면

◇ 남양군도로 이동하기 전 신사 참배하는 모습

◇ 현 육군사관학교 인근 태릉훈련소에서 훈련받는 모습.

◇ 훈련소에서 목총으로 훈련받는 모습.

◇ 남양군도에서 부대 건설을 위해 철로를 놓는 등 토목공사를 하는 장면

◇ 일본 1902부대 포대 진지에서 근무하는 모습

◇ 일본 북해도에서 중국인과 함께 촬영한 사진. 당시 중국인들도 만주 등지에서 징용되었다.

◇ 일본 후쿠오카현 광업소에서 채탄 작업을 위해 막장으로 들어가기 전 촬영한 모습
   한국인과 일본인의 시각

   
      <일본 아스카 高松塚의  벽화>
 
   나는 최근에 일본 속에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돌려봤다. 수백 Km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일본의 본질적인 정신문화를 알려고 노력했다.
   마침 어떤 분을 만나 정신문화를 이야기했더니 진정한 문화는 술집에 있다 하면서 술집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덕택에  일본의  술집 세계를 알게 되었고, 술집 마마의 위상과 한국 여인들의 슬픔, 한국인의 고등실업자 수만 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마 글로 쓰면 수백 권의 소설책이 되리라...
  그때 술집에서 만난 정란(貞蘭)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나에게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점>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슴에 찡- 하고 와닿는 느낌이 있어 여기에 소개를 한다.
 
   1. 한국인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평범한 근무 복과 노동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 한국인은 값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성공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공기밥 1사발, 단무지 3개, 김 3 장 정도 먹는 것을 다반사로 여긴다.
 
   3 . 한국인은 50평 이상 으리으리란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은  20평 정도 집에서 사는 것을 지족으로 알고 만족한다.
 
   4. 한국인은 비싼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5. 한국인은 어떻게 하면 탈세,감세를 하려고 잔머리를 굴리는데, 일본인은 어떻게 하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6. 한국인은 열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계속 씹어 대는데, 일본인은  한번 잘하고  9번 실수를 해도 그 잘한 점을  칭찬해 준다. 일본인은 전두환 노태우가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7. 한국인은 조금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꽉 찬 소주병인데 비해, 일본인은 아무리 알아도 그릇을 비워 두고 배우려 하는 항아리다.
 
   8. 한국인은 자기를 높이고 과시하며 상대방을 깔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자기를 낮추고 또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려 한다.
 
   9. 한국인은 내가 잘 먹고 출세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말하는데, 일본인은 내가 굶고 열심히 노력해야 자손이 잘 먹고 잘 산다고 절약을 한다.
 
   10. 한국인은 나라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일본인은 나라를 받들지 못해서 안달이고, 총리 말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11. 한국인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한는데, 일본인은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알려고 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다. 
 
   12. 한국인은 말로만 애국애족을 떠들고 실천이  문제인데, 일본인은 애국애족을 말로 떠들지 않아도 소리없이 행동으로 실천한다.
 
   13. 한국인은 외국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서 잔뜩 외제를 사오는데, 일본인은 외국에 나갈 때  일본 상품을 가지고 나가서 실컨 홍보하고 다닌다.

   14. 한국인 높은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깔아 뭉게 버리는데, 일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神으로 섬기며 예의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15. 한국인인 양반 체면이 있어 안먹어도 먹은 척, 책임이 있으면서 없는 척 오리발을  내미는데,  일본인은 무사 정신이 있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서로가 책임지겠다고 하며,그 책임자는 할복자살을 해버린다.  

   16. 한국인은 개개인이 사치하여 국가는 가난한데 비하여, 일본인은 한국보다 훨씬 어렵고 못살지만 국가는 부자다.

   17.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하지만 단체 일에는 싸움이 일어나고, 일본인의 개개인을 보면 형편없이 보이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단결이 되는 민족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봉길의사 순국장면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
(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피살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다.

윤 의사의 무릎을 꿇린 채 살해함으로써 일제가
윤 의사의 기개를 꺾으려했던 점,

총탄이 너무나도 정확히 윤 의사의 이마를
관통해 오히려 피가 별로 흐르지 않은 점 등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처연하게 만든다.

지난달 초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에 실린 이 사진을 발견한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 대표나
신운용 근현대사 팀장,

이 사진 사본을 전해 받은 유족이나 윤병석(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윤 의사 피살 장면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된데다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