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동네
하얀 연꽃 망울 터지다
초심방
2006. 8. 10. 23:11
품바타령에 톡톡…하얀 연꽃 망울 터지다
[일간스포츠 박상언]



전남 무안 일로읍 회산마을의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다. 연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면적만도 무려 10만평. 이제 매년 8월이 되면 하얀 군무의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가 됐다.
무안은 또 품바의 발상지다. 1980년대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도 어쩌지 못했던 1인극 <품바>를 기획·연출한 고 김시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 연꽃의 바다 백련지
백련지를 만나면 규모에 놀라고,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놀란다. 원래 일제 때 주변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땅을 파 만들었던 저수지였으나 인근 주민이 저수지 한켠에 백련 12주를 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연(蓮)은 흙탕물에 뿌리와 몸통을 맡겼어도 순백의 맑은 빛을 담아 물 위로는 청초하고 고결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연꽃의 꽃말도 '순결'이다. 태생적으로 부처님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종교를 떠나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만으로도 머리 속을 맴도는 온갖 상념을 떨쳐내기에 충분하다.
일로읍을 지나 백련지로 접어들면 초록의 바다가 펼쳐진다. 무려 10만평. 약 4㎞에 이르는 주변은 나무 데크가 깔린 숲길로 햇살을 피하며 산보하듯 감상할 수 있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산책로에 서면 백련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백련·홍련·가시연·어라연 등 다양한 연꽃이 줄을 서서 이방인을 기다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성한 초록의 연잎이 장관이다.
백련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7월부터 9월까지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때문에 하얀 백련의 군무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연꽃의 향기는 마음으로 맡는다'는 말을 되새기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서운함은 사라진다.
산책로 끝에는 연꽃 모양의 유리온실이 있다. 2층 규모의 수상 유리온실로 백련지의 또다른 볼거리다. 1층에는 연꽃을 바라보며 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고품격의 카페테리어와 함께 수련전시관이 있으며, 2층은 열대식물 및 기타 수생식물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련은 8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꽃을 가장 많이 피운다. 이번 주말부터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에 맞춰 무안군은 11일부터 15일까지 무안백련대축제를 마련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축제에는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 등 매일 다른 주제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무안군 문화관광과(061-450-5319)



■품바의 고향 천사촌
"허어 품바가 잘도 헌다/허어 품바가 잘도 논다/전제한님 신시열고/이 나라를 세우실적/배달이라 이름하여/홍익인간을 내세우니/에헤라 품바 잘도 논다"(지축타령)
1인극 <품바>는 독재정권 시절 우리 민족의 한과 울분의 역사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 시대의 도래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했다.
무안 일로읍 출신의 김시라가 <품바>를 각색·연출했고, 그가 1976년 창단한 인의예술회 소속의 정규수(1대 품바)를 앞세워 81년 일로면 공회당에서 첫 공연을 가진 후 무려 4000회가 넘는 공연 횟수를 기록하는 등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
품바의 발상지가 바로 일로읍에 있다. 읍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고갯마루를 넘으면 의산리라는 작은 마을 조금 못미쳐 오른쪽에 '품바발상지'란 글씨가 새겨진 큰 돌이 하나 서 있다. 그 뒤가 각설이들의 마을이었던 천사촌이다.
한 때 10개 동이 넘는 움막집이 들어서 수십명의 각설이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을 뿐 모두 풀밭으로 변했다.
의산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철종(68) 씨는 "10여년 전까지 움막이 있었제. 각설이들은 주변 동네 경조사를 모두 기억했고, 항상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지. 주인들은 당연히 이들을 대접해야 손님을 맞을 수 았었어. 마지막 품바가 일로읍내에 살고 있제"라고 회고했다.
김시라가 만든 1인극 <품바>의 주인공은 천장근이란 각설이다. 일제 때 목포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다 파업을 일으켜 수배를 받던 중 일로로 피신해 걸인 행세를 하던 실존 인물이다. 천장근이란 이름도 본명이 아니다.
원래 '작은이'라는 이름만 있었는데, 호적정리 과정에서 천 씨의 성과 작은이와 발음이 비슷한 장근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품바>는 천장근이란 주인공이 일제 이후 겪어온 인생역정을 현대 사회 분위기에 맞게 각색해 그리고 있다.
김시라는 천사촌에서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로 시작되는 <해방가> 등 수많은 품바타령을 배웠다.


의산리에서 일로읍을 거쳐 백련지로 가다 보면 길 가에 김시라의 생가가 있다. 그는 2001년 <품바> 2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다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생가에는 형수 혼자 살고 있는데, 입구에는 그의 시 제목인 <오! 자네 왔능가>라는 현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김시라는 품바타령을 통해 '나눔의 철학'을 추구했다. 받는 사람 뿐 아니라 주는 사람도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본시/우리는 크고 작은 빈걸통과 사랑만을 가지고/태어났을 뿐 그외 아무것도 없오/우선 나의 할 일이란/빈걸통에 물질이든, 정신이든, 지식이든/합당한 것을 채우는 일이요
그러나 이 걸통은 일종의 보관창고이며/그 안에 들어온 것은/음식과 같아 오래 보관할 수가 없으니/진정 나의 할 일이란/채워놓은 모든 것을/나의 사랑이라는 유일한 재산으로 포장하여/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정성껏 전함이요
그때야 그 모든 것이 비로소 나의 것이니/나의 것을 많이 가지시오/ 채우지 않음 또한 되악이나/채워놓고 부패시킴은 더 큰 죄악이 아니겠오'라는 시 <걸통과 사랑>에서 그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



전남 무안 일로읍 회산마을의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다. 연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면적만도 무려 10만평. 이제 매년 8월이 되면 하얀 군무의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가 됐다.
무안은 또 품바의 발상지다. 1980년대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도 어쩌지 못했던 1인극 <품바>를 기획·연출한 고 김시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 연꽃의 바다 백련지
백련지를 만나면 규모에 놀라고,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놀란다. 원래 일제 때 주변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땅을 파 만들었던 저수지였으나 인근 주민이 저수지 한켠에 백련 12주를 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연(蓮)은 흙탕물에 뿌리와 몸통을 맡겼어도 순백의 맑은 빛을 담아 물 위로는 청초하고 고결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연꽃의 꽃말도 '순결'이다. 태생적으로 부처님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종교를 떠나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만으로도 머리 속을 맴도는 온갖 상념을 떨쳐내기에 충분하다.
일로읍을 지나 백련지로 접어들면 초록의 바다가 펼쳐진다. 무려 10만평. 약 4㎞에 이르는 주변은 나무 데크가 깔린 숲길로 햇살을 피하며 산보하듯 감상할 수 있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산책로에 서면 백련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백련·홍련·가시연·어라연 등 다양한 연꽃이 줄을 서서 이방인을 기다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성한 초록의 연잎이 장관이다.
백련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7월부터 9월까지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때문에 하얀 백련의 군무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연꽃의 향기는 마음으로 맡는다'는 말을 되새기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서운함은 사라진다.
산책로 끝에는 연꽃 모양의 유리온실이 있다. 2층 규모의 수상 유리온실로 백련지의 또다른 볼거리다. 1층에는 연꽃을 바라보며 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고품격의 카페테리어와 함께 수련전시관이 있으며, 2층은 열대식물 및 기타 수생식물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련은 8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꽃을 가장 많이 피운다. 이번 주말부터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에 맞춰 무안군은 11일부터 15일까지 무안백련대축제를 마련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축제에는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 등 매일 다른 주제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무안군 문화관광과(061-450-5319)



■품바의 고향 천사촌
"허어 품바가 잘도 헌다/허어 품바가 잘도 논다/전제한님 신시열고/이 나라를 세우실적/배달이라 이름하여/홍익인간을 내세우니/에헤라 품바 잘도 논다"(지축타령)
1인극 <품바>는 독재정권 시절 우리 민족의 한과 울분의 역사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 시대의 도래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탄생했다.
무안 일로읍 출신의 김시라가 <품바>를 각색·연출했고, 그가 1976년 창단한 인의예술회 소속의 정규수(1대 품바)를 앞세워 81년 일로면 공회당에서 첫 공연을 가진 후 무려 4000회가 넘는 공연 횟수를 기록하는 등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
품바의 발상지가 바로 일로읍에 있다. 읍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고갯마루를 넘으면 의산리라는 작은 마을 조금 못미쳐 오른쪽에 '품바발상지'란 글씨가 새겨진 큰 돌이 하나 서 있다. 그 뒤가 각설이들의 마을이었던 천사촌이다.
한 때 10개 동이 넘는 움막집이 들어서 수십명의 각설이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을 뿐 모두 풀밭으로 변했다.
의산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철종(68) 씨는 "10여년 전까지 움막이 있었제. 각설이들은 주변 동네 경조사를 모두 기억했고, 항상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지. 주인들은 당연히 이들을 대접해야 손님을 맞을 수 았었어. 마지막 품바가 일로읍내에 살고 있제"라고 회고했다.
김시라가 만든 1인극 <품바>의 주인공은 천장근이란 각설이다. 일제 때 목포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다 파업을 일으켜 수배를 받던 중 일로로 피신해 걸인 행세를 하던 실존 인물이다. 천장근이란 이름도 본명이 아니다.
원래 '작은이'라는 이름만 있었는데, 호적정리 과정에서 천 씨의 성과 작은이와 발음이 비슷한 장근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품바>는 천장근이란 주인공이 일제 이후 겪어온 인생역정을 현대 사회 분위기에 맞게 각색해 그리고 있다.
김시라는 천사촌에서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로 시작되는 <해방가> 등 수많은 품바타령을 배웠다.


의산리에서 일로읍을 거쳐 백련지로 가다 보면 길 가에 김시라의 생가가 있다. 그는 2001년 <품바> 2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다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생가에는 형수 혼자 살고 있는데, 입구에는 그의 시 제목인 <오! 자네 왔능가>라는 현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김시라는 품바타령을 통해 '나눔의 철학'을 추구했다. 받는 사람 뿐 아니라 주는 사람도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본시/우리는 크고 작은 빈걸통과 사랑만을 가지고/태어났을 뿐 그외 아무것도 없오/우선 나의 할 일이란/빈걸통에 물질이든, 정신이든, 지식이든/합당한 것을 채우는 일이요
그러나 이 걸통은 일종의 보관창고이며/그 안에 들어온 것은/음식과 같아 오래 보관할 수가 없으니/진정 나의 할 일이란/채워놓은 모든 것을/나의 사랑이라는 유일한 재산으로 포장하여/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정성껏 전함이요
그때야 그 모든 것이 비로소 나의 것이니/나의 것을 많이 가지시오/ 채우지 않음 또한 되악이나/채워놓고 부패시킴은 더 큰 죄악이 아니겠오'라는 시 <걸통과 사랑>에서 그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