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이야기

가을햇살 속 할미들 환한 웃음이 곱다

초심방 2006. 10. 9. 13:05
가을햇살 속 할미들 환한 웃음이 곱다
돈은 안돌고....그래도 대목장엔 사람냄새 “물씬”

 

남효선 기자 nulcheon@uljin21.com

 

추석명절 앞둔 죽변 대목장 풍경

하늘은 높고 바람은 따사롭다. 몇 차례의 태풍을 견딘 들녘은 보기에도 손으로 움켜잡고 싶을 만큼 탐스런 황금빛이다.

살아갈수록 도무지 모이지 않는 게 요즘 살림살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허리띠 바짝 조여매고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자식새끼 공부시키며 조금씩 저축도 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도무지 하루하루 살기가 빠듯하다.

   
동해연안해역에 광범위하게 형성하고 있는 냉수대 세력과 북한수역에서의 중국쌍끌이어선 의 오징어 어족 남획으로 오징어 성어기인 9월, 1일 200여척씩 드나들던 오징어 파시인 죽변항이 썰렁하다. 지난 9월20일경 오징어무리가 조금씩 출현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예전의 풍요로움은 찾아볼 수 없다.

예년과 달리 올해 추석연휴는 유난히 길다. 몇 주일 전부터 방송에서는 징검다리 휴일이다 뭐다 하면서 추석연휴가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국외선 항공권은 모두 매진됐으며 연휴에 해외로 미리 나가는 이들이 ‘몸 대신 고향으로 보내는 선물꾸러미’가 넘쳐 국내 택배업계가 마비가 됐다고 호들갑을 떤다.

서민경제나 재난관리는 뒷전...유일한 목표는 대권
 
징검다리 연휴 셋째날인 3일, 서해대교 위에서 무려 60여명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한번도 제대로 솟구칠 줄 모르고 여전히 바닥만 기는 경기 때문에 추석명절마저도 신명이 덜한 차에 찬물을 끼얹듯 가슴이 저려온다.

서민경제야 바닥을 치든, 예고없는 대형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국가적 재난관리 능력이야 아랑곳없이 이 땅의 정치권은 여전히 분주하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치권은 니전투구의 대권싸움에 돌입한지 오래다.
내년 12월에나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미 정치권은 제 몫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여당은 언감생심 힘들게 얻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경선제(Open Primary)' 라는 새 카드로 이 땅의 선량한 국민을 다시 정치실험장으로 유인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 이른바 박근혜와 이명박은 일찌감치 대권경선을 밝히며 ‘꿈에도 잊지못할’ 대권고지를 향한 도화선에 불을 붙인지 오래고 손학규는 연일 전국을 돌며 하루는 농부에서 또 하루는 노동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오랜 세월 피흘리며 민주화를 쟁취한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이른바 참여정부는 애초의 개혁의지 따위는 ‘핫바지 방귀새듯’ 흘려버리고 ‘한발자욱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수구세력의 ‘근엄하고 점잖은’, 그러나 탐욕스러울만큼 집요한 저항과 또 자신들의 ‘자가당착적인 도덕적 우월의 늪’에 빠져 4년이 넘도록 허우적거리고 있다. 

수 십 년 한국사회를 옥죄어 온 반공이데올로기가 국민의 힘으로 무력해지자 이 땅의 가진자들은 연일 ‘작통권 환수 불가'를 외치며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만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안보논리를 구축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예년과 달리 추석연휴가 너무 길어서인지 국내 유수의 언론의 모습도 예년과는 다르다. 예년 같으면 추석이니 설이니 이른바 민족명절을 앞두고 ‘정치권의 민심기행’이니 ‘올 추석연휴의 정치적 화두는 이것이니’ 하고 연일 떠들어대던 것이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늘 앞장 서 이 땅의 전망과 화두를 앞 다투어 끄집어내던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도 상투적으로 써먹던 ‘명절 민심기행 예고편’을 보도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명절대목장 “썰렁”....칠십평생 장판지킨 할미들 얘기꽃만 “무성”
몇 안되는 오징어채낚기선 출항하자 죽변항엔 햇살만 “가득”

추석을 사흘 앞 둔 동해변방 경북 울진 죽변장. 울진의 다른 전통장시와는 달리 죽변장은 동해안의 최고의 어항인 죽변항을 끼고 있어 그 흥청거림이 남다른 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예전 같지가 않다. 장터주변 분위기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

   
예부터 동해안 어물집산지를 낀 닷새장으로 이름난 죽변장이 명절을 앞둔 대목임에도 예전 모습같지 않다. 칠십 평생을 죽변장을 지켜 온 할미들이 늘어놓은 좌판엔 오후 세시가 넘도록 팔리지 않은 장거리만 그득하다.
올해 유난히도 냉수대다, 북한수역의 중국쌍끌이어선 남획으로 오징어 어획량이 지난 해 보다 무려 10배 이상이나 뚝 떨어졌다고 하지만 추석을 앞둔 대목장분위기를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대목장을 보러 온 장꾼들의 얼굴에는 웃음대신 수심만 가득하다.

아침일찍 서둘러 햅쌀과 잘 마른 고추를 들고 나와 좌판을 벌였지만 점심때를 훌쩍 지나 오후 세시가 되도록 햅쌀 한 되 팔리지 않는다.

70평생 닷새마다 죽변장에 좌판을 벌이며 죽변장을 지켜온 할머니들이지만 이번 명절대목장처럼 흥이 안 나기는 처음이다.

   
영천서 죽변대목장을 보러왔다는 김씨가 늘어놓은 신발좌판에는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아낙이 흥정을 벌인다. 아이의 마음은 이미 로봇그림이 붙은 신발에게 가 있다.
   
   
그래도 명절 앞 둔 대목장이라서인지 아낙들이 드문드문 장판을 기웃거린다.
죽변 대목장을 보러 멀리 영천서 왔다는 김씨가 벌여 놓은 신발 좌판에 젊은 아낙 둘이 아이들 손을 잡고 흥정을 벌인다. 이미 아이는 로봇그림이 붙은 알록달록한 신발을 손에 감싸쥐고 있다. 

해가 중천을 넘자 할미들은 팔리지 않는 장거리는 뒷전에 밀어놓고 좌판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드러나는 할미들의 주름진, 그러나 환한 웃음이 곱다.

   
지금쯤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왁자한 죽변항 어판장 부근도 예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드문드문 어판장에 부려지는 오징어를 손질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예전처럼 재빠르지 않다.
   
'피데기'로 더 잘 알려진 죽변산 오징어는 볕좋은 가을날 간간한 해풍에 늘어말려야 제 맛이난다. 오징어철임에도 오징어가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자 피데기를 갈무리하는 아낙들의 손놀림도 흥이 나질않는다.
밤새 잡은 오징어를 가득 실은 오징어채낚기선이 죽변항을 가득 메우고 싱싱한 오징어를 스무 마리씩 담은 상자로 가득 찰 어판장에는 몇 몇 아낙들이 빙 둘러앉아 오징어를 갈무리하고 있다. 오징어를 만지는 아낙들의 손길이 그닥 신명나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20일경에야 비로소 오징어 무리가 죽변 연근해 어장에 드문드문 출현하면서 조금씩 활기를 띠던 죽변항도 예전처럼 오징어가 안 잡히자 금세 풀 죽은 베옷처럼 축 널어져 있다.

마침 어장배(소형어선, 연안어장에서 잡어바리를 전문으로 하는 배)가 스무 마리 남짓하게 싱싱한 문어를 풀어놓았다. 금세 주변으로 중매인들이 모여들었다.

   

갓 잡아 온 문어가 텅빈 어판장을 흡사 바다속처럼 스믈스믈 헤집고 다닌다. 제 어미의 손을 잡고 죽변항 나들이에 나선 아이에게는 이보다 더 신기한 것은 일찌기 없었던 듯 스믈거리는 문어를 발로 툭 차본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죽변항 나들이에 나선 아이 둘은 어판장 바닥을 슬슬 기는 문어가 신기해 발로 툭 차보기도 한다. 중매인들이 입찰을 마친 썰렁한 어판장엔 여전히 바닥을 슬슬 기는 문어와 아이 둘과 그 어머니만 남았다.

   
갓 잡아올린 싱싱한 오징어를 뭍으로 가져오기 전에 어부들은 배에 줄울 걸고 오징어를 말렸다. 이렇게 말린 오징어를 '배오징어'라 하며 마른 오징어 중에서 최고의 상품으로 대접받는다.
   

오징어 만선을 꿈꾸며 항구에 정박해 있는 오징어채낚기 배의 집어등 곁에는 간밤에 잡아 걸어놓은 오징어가 허연 배를 뒤집고 가을 햇살을 받고 있다. 오후 네시 경이 되자 어부들은 포구에 묶어둔 ‘끝나지 않는 노동의 매듭’을 풀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몇 되지 않은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오징어 무리를 좇아 바다로 나가자 어판장에는 말간 가을햇살이 가득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