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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푸르른 한산도… '바다·바람의 노래' 듣다

초심방 2008. 11. 29. 11:34

한산도는 유명하다. 이름값으로만 치면 제주도 울릉도 거제도 등의 큰 섬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한산도를 잘 안다는 이들은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이 그 섬을 찾긴 해도 충무공의 유적지인 제승당만 잠시 들렀다 떠나기 때문이다.

유명한' 한산도는 그렇게 아직도 조용하고 아늑한 섬마을로 남아 있다.

한산도의 평온한 갯풍경을 찾아 떠났다.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뉴파라다이스호는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가로질렀다. 통영 앞바다는 천혜의 양식장이다. 거제도와 한산도, 용초도, 비진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맞닿은 듯 이어져 파도를 막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 실린 차 안에 그대로 앉아 한산도를 맞았다. 한산도의 선착장은 제승당 인근에 있다. 한산도는 노량, 명랑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대첩의 전적지다. 이순신 장군 휘하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이 통제영에서 지금의 통영이란 이름이 나왔듯, 한산도의 곳곳은 충무공의 역사를 땅의 이름으로 간직하고 있다. 제승당이 있는 두억리(頭億里)는 당시 바다에 떨어진 왜군의 머리가 1억개나 됐다고 해서, 두억리의 포구 문어포(問於浦)는 도주하던 왜군들이 길을 물었다 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

두억리 뒤편의 개미목은 왜군들이 도망치느라 개미처럼 달라붙었던 곳이고, 면사무소가 있는 진두(陳頭)는 당시 진영이 설치됐던 곳이다.

제승당 일대에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충무공이 홀로 앉았던 수루와 한산정 충무사 등이 복원돼 있다. 이번 일정은 제승당 외의 한산도에 초점을 맞췄기에 차는 제승당이 아닌 반대편 대고포로 향했다.

섬에서 만난 첫번째 마을인 대고포 앞바다에는 아담한 갯벌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을 지나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달리면 여차란 곳이다. 길 옆으로 보이는 바다는 작은 호수들 같다. 섬과 섬 사이, 만과 곶에 둘러싸인 둥글둥글한 작은 바다가 구슬 꿴 목걸이처럼 이어진다. 잔잔한 바다는 눈부신 태양 아래 옥빛으로 영롱하다.

강원 산자락엔 나목 위에 흰 눈이 내려 앉았다지만 한산도를 가득 덮은 상록수림은 여전히 청청하다. 황톳빛 들녘도 푸성귀들로 푸르다. 시금치를 캐고 있는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더니 "한산도 시금치는 겨울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당도가 높고 향이 짙다"고 자랑한다.

여차 앞바다는 하얀 부표들로 가득하다. 바다 위에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린 듯한 풍경이다. 굴 양식장이다. 그러고 보니 부두 주변은 온통 굴껍질 천지다. 전국 굴의 80%를 생산한다는 통영에서도 한산도는 굴의 주요 생산지라고 한다.

차를 돌려 섬의 한가운데인 망곡을 지나 문어포로 향한다. 아담한 포구에 차를 대고 잠시 걸어 오르면 벼랑 위에 통영만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한산대첩기념비를 만난다. 위압적인 탑의 모습에서 충무공보다는 이 탑을 세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문어포는 막다른 길이다. 다시 창동으로 나와 면사무소가 있는 진두로 간다. 길 중간에 해송 몇 그루 삐죽 솟은 투구같이 생긴 생이섬이 눈길을 잡아 끈다.

진두 앞바다 250m 거리에 추봉도가 있다. 지난해 두 섬을 잇는 추봉대교가 놓였다. 아령 모양으로 길쭉한 추봉도에는 봉암, 추원, 예곡, 곡룡포의 네 개 마을이 있다. 외길의 포장도로가 이들을 잇고 있다. 능선을 달리는 길을 따라 통영의 푸른 바다가 크게 펼쳐지고, 바다를 스치는 길에선 향긋한 통영 생굴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추원과 예곡 사이 언덕엔 포로수용소 터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근 거제에 있던 포로수용소의 분소 다. 보다 난폭한 포로들을 가두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봉암은 거제 학동몽돌해변에 견줄 만한 아름다운 몽돌해변이다. 300여 m 되는 해변에는 아름드리 둥치의 해송이 군락을 이룬 솔숲공원이 있다. 자갈을 애무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사랑을 속삭이기에 딱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