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오는 사지(寺誌)나 사적기가 없어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절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말의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의 탄연(坦然)국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아래에 적은 이 절의 연혁은 역시 절에서 전하는 것을 옮긴 것인데, 물론 모두 정확한 기록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유서있는 사지·사적기를 갖고 있지 않은 현실이니만큼 이처럼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사전(寺傳)이나마 어느 정도는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 도선국사가 창건했을 때는 보현사(普賢寺)라고 했었고 위치도 지금보다 서쪽으로 약 300m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서는 탄연 스님의 중창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초(自超) 무학(無學) 스님이 중창하였는데, 특히 무학대사는 1394년 한양 천도 후 이곳을 수시로 왕래하며 수도정진하였고, 또한 지리적으로 볼 때 이 곳을 한양성 수비의 요충지로 판단하여 나라에 이곳을 중시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밖에 기화(己和) 함허(涵虛) 등의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한 선승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모두 불에 탔으나 1600년무렵 한양을 지키기 위한 외곽성곽의 구실로서 한양 수비에 많은 필요성이 인정되어 왕명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 뒤 1940년 김만신행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절을 중창하면서 절 이름도 관음사(觀音寺)로 바꾸었다. 1957년 불교정화운동 때는 시인 고은(高銀)이 이곳에 승려로 있으면서 절 이름을 도선(道詵)의‘선‘과 자신의 법명인 일초(一超)에서 ‘일‘자를 따 일선사(一詵寺)로 바꾸었다. 1962년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에 등록하면서 현재의 일선사(一禪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절 측에서는 처음 창건될 당시의 이름인 보현사로 바꾸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실제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30m떨어진 곳에 보현굴(일명 다라니굴)이라고 하는 굴이 하나 있다.
절에는 대웅전·약사전·산신각·요사 등의 전각이 있다. 이 가운데 산신각은 정체 모를 이교도들에 의해 불에 타 현재 터만 남아 있는데, 이때 산신각 불화가 훼손되었다. 이곳에는 또 바위에 새긴 칠성도와 산신도가 있는데 역시 못된 이교도들에 의해 훼손되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그 안에 관음상·석가모니후불도·산신도·신중도 등의 불화가 있으나, 전각을 비롯하여 모든 불화들이 모두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안에 약사상·약사후불도 및 독성도·칠성도·지장도 등이 있으나 역시 전각을 포함하여 모두 근대의 작품들이다. 절에서는 현재 요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짓는 불사를 진행 중이다.
'전국사찰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휴암 (강원도 양양) (0) | 2012.06.05 |
---|---|
조계사 (서울) (0) | 2011.11.30 |
[스크랩] 등명낙가사 (괘방산) (0) | 2011.09.14 |
동학사 (계룡산) (0) | 2011.09.05 |
상원암 (계룡산) (0) | 201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