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 첫 시각장애인 법관 최영 판사 재판 가보니…
판사란 직업에 무한 책임감
사건 기록 음성파일로 변환…노트북으로 듣고 메모도
"여성 첫 판검사 진출 때처럼 법원도 나도 변화해 갈 것 "
"시각장애인 판사라서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판사라는 직업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내 첫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32)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1일 언론에 자신의 재판 모습을 첫 공개한 최 판사는 서울북부지법 8층 소회의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법원 안팎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동료 판사들과 직원들이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고 국민들도 성원해 주고 있어서 제가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점만 빼면 나지막하면서도 차분한 말투는 전형적인 판사였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서울북부지법 701호 민사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최 판사는 재판장인 정성태 부장판사(46)의 좌측에 앉았다. 최 판사 앞에는 노트북컴퓨터가 있었고, 그의 왼쪽 귀에는 노트북에 저장된 음성파일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자 최 판사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노트북의 음성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해 사건기록을 검토하거나, 주요 내용을 노트북에 메모했다.
최 판사는 "서면으로 낸 진술 자료는 업무보조인이 타이핑해서 음성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로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며 "업무환경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법원도 최 판사의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건물 내외부에 점자 유도블록을 설치했고, '제11민사부 지원실'을 신설했다. 지원실은 최 판사 방인 909호실의 맞은편에 있어 최 판사가 원할 때 언제든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지원실의 최선희 업무보조인(30)은 최 판사의 '손과 발'이다. 사건기록을 한글파일로 변환하고, 사진이나 사물은 묘사를 해서 최 판사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 보조인은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최 판사와 함께 보낸다"며 "법조문을 읽다가 막힐 때도 있는데, 화 한 번 내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해 주는 배려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최 판사에게 사건이 배당되는 비율은 다른 판사들의 40% 정도다. 이창렬 공보판사는 "최 판사가 초임이고 시각장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른 판사에 비해 적은 업무가 배당됐다"며 "앞으로 업무지원시스템이 발전하고, 업무적응도가 높아지면 점차 업무 배당량을 늘려 다른 판사들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용된 뒤 두 달간 법원도 변하고 저 자신도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걸 느꼈다"는 최 판사는 여성들이 법조계에 처음 진출할 당시와 본인의 경우를 비교했다. "여성 판검사들이 임용되는 과정에서 법원도 변했죠. 이제 제가 법원에 들어왔고, 법원도 저도 변화해 갈 겁니다"라는 최 판사는 "국민이 부여한 사법권의 행사라는 무거운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만 생각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최 판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98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시력이 서서히 나빠져 결국엔 실명에 이르는 희귀병. 그는 현재 빛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만 알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법률서적을 음성파일로 변환시켜 들으며 공부해 다섯 차례 도전 끝에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도 1030명 중 40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지훈 기자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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