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수술밖에 길이 없다길래 당장 했죠”

[조선일보 오윤희기자, 김용국기자]
173㎝의 후리후리한 키에 선머슴처럼 활달한 여고생.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한 안혜원(18·인천 명신여고 3학년)양이다. 다소곳하고 온순한 여학생일 것이란 선입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안양은 지난해 8월 아버지에게 신장을 이식했고 지난 1일 가천문화재단에서 ‘심청 효행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묻자 안양은 짤막하게 “좋죠”라고 대답했다가 “그런데 제가 그런 상을 받을 만큼 큰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며 쑥쓰러운 듯 말했다.
주차장 관리 일을 하는 안양의 아버지는 10년 넘게 만성 신부전증을 앓았다. 안양은 아버지가 매주 세 번씩 신장 투석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누워 계시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안타깝게 지켜봤다. 그래서 지난해 의사가 “더 이상은 신장 투석이 힘들다. 수술밖엔 길이 없다”고 했을 때 “그럼 제가 신장 이식을 하겠다”고 선뜻 나섰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일상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잖아요. 그리고 수술을 받고 나면 아빠가 건강해진다니까 당장 하겠다고 한 거죠. 마침 여름방학 기간이어서 망설일 것도 없었어요.”
수술을 받기 전 담당 의사가 “만에 하나 수술이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안양은 ‘나한테 그런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거다. 모든 게 다 잘 될 거다’라고 굳게 믿었다고 했다. 그랬기에, 딸의 결정을 말리지도 못하고 수술실 앞까지 안쓰럽게 따라갔던 어머니와 신장이 좋지 않아 이식 수술을 하지 못했던 한 살 터울 오빠를 안심시키면서 담담하게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취에서 깨고 누워 있는데 제 옆에서 엄마가 흐느껴 우시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 엄마가 나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한동안 가슴이 찡했어요.” 수술 직후 안양의 손을 가만히 잡고 그저 “고맙다” 는 말 한 마디만 한 아버지도 뒤돌아서서는 조용히 소리죽여 울었다고 했다.
한창 외모에 신경이 쓰일 10대 소녀인지라 몸에 흉터가 남는 게 조금 속상했지만 안양은 “상처도 4~5㎝밖에 안 되고 나중에 수술로 없앨 수 있대요. 그 말 듣고 한시름 놓았어요”라며 ‘하하’ 웃었다. 늘 얼굴이 거뭇거뭇하던 아버지는 이제 혈색도 환하게 피었고 더 이상 신장투석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고3인 안양은 요즘 11월 수능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다. 대학입시 준비에 열을 올릴 고2 여름방학 때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나중엔 집에서 요양하느라 공부를 전혀 할 수 없었다. 구김살 없는 태도에 쑥쓰러울 땐 간간이 혀를 쏙 빼물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곤 하는 안양은 반에서 10등 정도 하고 있다. 모든 과목 중에서 수학을 제일 좋아한다는 안양은 꼭 경영학과에 가서 졸업 후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 )
(사진=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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